맨드라미에게 부침-권대웅

언제나 지쳐서 돌아오면 가을이었다.
세상은,
여름 내내 나를 물에 빠뜨리다가
그냥 아무 정거장에나 툭 던져놓고
저 혼자 훌쩍 떠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나를 보고 빨갛게 웃던 맨드라미
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단지 붉은 잇몸 미소만으로도 다 안다는
그 침묵의 그늘 아래
며칠쯤 푹 잠들고 싶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며 일어서는 길에
빈혈이 일어날 만큼 파란 하늘은 너무 멀리 있고
세월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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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넘어질 권리가 있다

- 실패의 힘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중에서


어느 날 직장에 다니는 제자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들어 마치 제가 먼지처럼 회사에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몇 가지 실수로 요즘 많이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이어서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요. 그래서 성과 위주로 능력을 평가하는 인사고과에서 늘 뒤처지고 말아요. 모두가 인정받는 곳에서 저만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부끄럽고 외로워요. 실수를 할까봐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있어요. 모두들 어떻게든 잘하려고 열심인데,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존재로 어정쩡하게 회사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먼지처럼, 오물처럼 말이에요.”

편지를 읽고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 자신이 먼지처럼 작게 여겨지는 순간들, 누구나 살면서 때때로 느껴지는 감정입니다. 해변의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처럼 작고 초라한 존재. 세상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는데 유독 나만 실패자인 듯 우울하고 힘 빠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호승, <햇살에게>


 

하지만 정호승 시인은 그런 먼지를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이른 아침 먼지를 보는 일이 뭐 그리 감사할까 싶은데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먼지처럼 무시하고 쓸어버릴 수 있는 일상의 아주 작은 존재들을 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을 통해 나 역시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나도 실패할 수 있다

- 중략-


 

축복(benediction)은 라틴어의 ‘누군가에 대해 좋은(bene) 말을 한다(dictio)’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는 바로 타인에게서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헤겔(Hegel)은 인간이 존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명력이 되는 ‘좋은 말’이란, 나의 업적이나 재능, 혹은 성공에 대한 인정이나 칭찬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먼지 같은 나’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한다면, 즉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햇살을 받지 못한 새싹처럼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나 씨앗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명력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시들시들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를 그대로 긍정하고 축복하기


헨리 나우엔(Henri Nowen)은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은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긍정이란 당신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그 존재 자체에 대해 “예스”라고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서로를 인정해주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항상 서로를 찬란하게 비춰주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햇살 같은 축복이 절실할 때는 자신이 먼지처럼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 축복의 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먼지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별처럼 반짝이는 존재입니다. 작은 문틈으로도 축복 같은 햇살이 찾아와 나와 함께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햇살로, 또 내일은 내일의 햇살로 절망의 순간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그 찬란한 빛이 날마다 우리를 축복해주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예스”라고 긍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해보려고 애썼지만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먼지처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마야 안젤루(Maya Angelou)의 시처럼 이렇게 말해보세요.


당신들 나를 땅에 눕혀 짓밟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 먼지처럼 일어나리라

(……)

자꾸 솟는 달처럼 해처럼

어김없이 밀려오는 조수처럼

높이 솟는 희망처럼

그래도 나, 솟아오르리라

- 마야 안젤루,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Still I Rise> 중에서


그리고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자신에게 이렇게 격려해주세요. “끊임없는 시도, 끊임없는 실패, 그 무슨 상관인가.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훌륭히 실패하라.”   더불어 나를 긍정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교류를 나눠보세요. 적극적으로 그런 모임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긍정해주는 연습을 부단히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 Ⓒ2011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 저작권이 있으므로 정확한 출처없이 무단으로 전재, 복재,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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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조각>- 나희덕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늘은 내가 밤길을 간다. 아이는 내가 세상의 어둠으로부터 저를 지켜줄 유일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굉장한 걸 발견한 듯 손을 끌어당기며 외친다.
“엄마! 저기 보석이 있어요.”
아이는 골목 입구의 폐차장 쪽을 가리키며 그리로 달려가려고 한다. 그곳엔 외등의 불빛을 받아 무언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부서진 차체에서 흩어져나온 유리조각일 것이다. 낮에 그 앞을 지나오면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밟으면 위험할 텐데 하고 생각했었다.
“성주야, 빛난다고 다 보석은 아니란다. 저건 깨진 유리조각일 뿐이야. 잘못 만지면 다쳐.”
나의 말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에요. 보석이란 말이에요.”
아이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럴 떄 나의 어머니라면...... 어머니는 아마도 나에게 “그래, 보석이 맞아. 보석이 참 예쁘구나.”하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반짝이는 게 보석이라고 믿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어느 대낮 빛을 잃고 흙먼지 속에 뒹굴고 있는 유리조각의 초라함에 스스로 실망하기 전까지는, 또는 빛나는 그것에 손을 베이기 전까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밤에 개울을 건넌 적이 있다. 지금 내 아이가 그러듯이 어린 나도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았으리라.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하나님 목소리를 들어봤어요?”
“그럼, 들었구말구.”
“어떤 목소린데요?”
“마치 저 물소리들을 합쳐놓은 것 같지.”
나는 물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거렸고. 또렷하지는 않지만 들릴 듯 말 듯 한 어떤 소리가 내 마음에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불빛에 반짝이는 물비늘의 모습은 낮에 볼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머니 무릎 아래서 키워온 신앙은 이제 거의 잃어버렸다. 어린 시절 주머니에 불룩하던 유리구슬들이 하나 둘 어디론가 굴러가 버린 것처럼, 신앙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맑은 눈도 잃어버렸다. 그래도 물가에 앉을 때면 그 많은 물소리 속에서 어떤 음성이 섞여 들리는 것 같아 귀기울이곤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머니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아이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빛나는 게 다 보석은 아니라고. 어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나는 내 속의 빛 하나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음을 느꼈다. 유리는 유리일 뿐이라는  현실에 대한 씁쓸한 깨달음만이 그 빛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음을 말이다.
유리조각이 불빛에 반짝이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한 장의 유리일 수 없도록 깨어졌기 때문이다. 깨어진 유리의 날, 그 속에는 제 몸을 잃어버린 슬픔이 간직되어 있다. 그리고 세상엔 정작 눈부신 보석보다는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살아가는 유리조각 같은 존재가 더 많을 것이다. 그 슬픔들이 밤마다 되살아나 저렇게 반짝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시절 우리의 눈에 비친 세상은 왜 그리도 아름다웠는지, 모든 게 반짝이고 그래서 모든 게 보석처럼 마음에 와 박혔는지...... 그때의 빛은 잃어버렸지만 또 다른 슬픔의 빛 하나를 받아들이며 나는 오늘 밤길을 간다. 한 어린 영혼의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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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작 눈부신 보석보다는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살아가는 유리조각 같은 존재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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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데."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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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 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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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림 - 실업
 
즐거운 나날이었다 가끔 공원에서 비둘기 떼와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오 무렵 비둘기 떼가 역으로
교회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나면 나는 오후 내내
순환선 열차에 고개를 꾸벅이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가고 싶은 곳들이 많았다 산으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아버지 산소 앞에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나 여느 날의 퇴근길처럼
포장마차에 들러 하루 분의 끼니를 해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과일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름다웠다 아내와
아이들의 성적 문제로 조금 실랑이질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어서는 다음 날 해야 할 일들로
가슴이 벅차 오히려 잠을 설쳐야 했다 
이력서를 쓰기에도 이력이 난 나이
출근길마다 나는 호출기에 메시지를 남긴다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 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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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무에 대하여 - 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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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너희가 하늘을 나는 걸 봤단다.

바람에 실려

소중한 것 하나만 지닌 채

훨훨 길을 떠나는 모습이

마냥 기쁘게만 보였단다.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잘것없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면 나도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호시노 토미히로 - <민들레> 중에서

 

05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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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픔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 불을 켜서

오래 꺼지지 않도록

유리벽 안에 아슬하게 매달아 주고 싶다.

나의 슬픔은 언제나

늪에서 허우적이는 한마리 벌레이기 때문에

캄캄한 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거나

아득하게 흔들리는 희망이기 때문에.


빈 가슴으로 떠돌며

부질없이 주먹도 쥐어 보지만

손끝에 흐트러지는 바람소리,

바람소리로 흐르는 오늘도

돌아서서 오는 길엔 그토록

섭섭하던 달빛, 별빛.


띄엄띄엄 밤하늘 아래 고개 조아리는

나의 슬픔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불을 켜서

희미한 기억 속의 창을 열며

하나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다.

제 몸마저 남김 없이 태우는

그 불빛으로

나는 나의 슬픔에게

환한 꿈을 끼얹어 주고 싶다


나의 슬픔에게 - 이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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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낮의 지는 더위쯤

참고 견딜 수 있지만

밀물처럼 밀려오는 밤은 정말

견딜 수가 없다.

나로 하여금 어떻게

이 무더운 여름날의 밤을

혼자서 처리하라 하는가

내 주위를 머물다 떠난 숱한

서러운 세월의 강 이쪽에서

그리운 모든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지만

밤이 찾아오는 것만은 죽음처럼

견딜 수가 없다.

차라리 8월의 무더위 속에 나를 던져

누군가를 미치게 사랑하게 하라.

빈 들에서 부는 바람이 되어

서러운 강이 되어.......

[서러운 강 - 박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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