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2018년 후기 모집

 

문학치료학과에도 지원하실 수 있습니다.

 

문학치료/저널치료/글쓰기치료에 관심있는 분들,
치료사가 될 뿐 아니라 자신의 문제해결과 성장을 원하시는 분

안타깝게 봄학기 지원 기회를 놓치신 분들께 다시 기회를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우연으로 시작해도 필연이 되는 만남을 기다리겠습니다. 

 

 

원서 접수 기간:  2018. 5. 28(월)~ 7. 17.(화)

문의: 대학원 교학처 041-570-7750 (교학팀장님과 상담 가능)

                           041-570-7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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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치료 대학원 어디가 좋은가요?"

 

"어디에서 문학치료(Poetry Therapy) 와 저널치료(Journaltherapy)와 글쓰기치료를

 제대로 배울 수 있나요?" 

 

늘 듣는 질문입니다.

 

자신있게 나사렛대학교 대학원 문학치료 학과를 권합니다.

알차고 실속있는 커리큘럼만 보셔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문학치료를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에 그치지 않고 모든 수업에 이론과 실습이 병행되며 꼼꼼한 수퍼비전 수업을 통한 진정한 문학치료사(문학/글쓰기활용 심리상담사)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불어 대학원생 선생님들은 수업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와 상처가 치유되고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도전해보십시오.  

 

궁금하신 점은 언제든 상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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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문학치료학과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나사렛대학교 문학치료학과는  미국IFBPT국제문학치료협회와 협약서에 의해 교과과정 및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국내 유일의 <협동과정이 아닌> 독립된 문학치료전공 입니다.

 

또한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 공인 문학치료사 자격증과 저널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교수<수퍼바이저: 캐슬린 애덤스>에 의해 정통 문학치료와 저널치료를 공부할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대학원입니다. 

 

 

최고의 전문가를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나사렛대학교 대학원 문학치료학과는

문학치료와 저널치료에 대한 명확한 이론과 기초가 되는 심리학/상담학 이론들, 그리고 그에 근거한 실습과 수퍼비전을 통해 살아있는 문학치료와 저널치료의 이론 뿐 아니라 실습를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실습을 통해 자신의 문제가 치유되는 체험도 하시게 됨으로써 별도의 교육분석을 받은 필요성이 줄어듭니다. 또한 글쓰기를 통한 self-supervision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많은 대학원생분들이 학기가 지날 수록 변화하고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지원자격: 정규대학교 학사학위 이상 취득자(2018년 2월 학위취득예정자) 및

                법령에 의해 동등한 학력이 인정되는자

전형방법: 서류심사(50%) 및 면접고사(50%)

제출서류: 입학원서               

                학위증명서, 학사(및 최종학위)과정 성적증명서,

                학사(이상)졸업(예정)증명서

                자기소개서 (문학치료학과는 학업계획서를 자기소개서로 대치함.

                지원 동기, 문학치료사가 되고 싶은 이유와 이후의 계획 등 포함)        

장학금혜택: 성적우수자, 

                재활/복지관련 기관 근무자,

                현직교원 및 일반교육기관 종사자 (관련자는 재직증명서 필요)

                기독교교역자(목사, 전도사 등)

기타혜택: 미국 Center for Journal Thearpy, Inc.의 프로그램에 지도교수와 함께 연수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Expressive Therapies Summit에 지도교수 인솔하에 참여

               NAPT(전미문학치료학회)준회원 가입 및 학회 참여

                  
입시일정:

 

   원서교부 및 접수기간: 2017. 11. 20-2018. 1. 8 (평일 09:00-17:30) 대학원 교학팀 (우편접수가능)   

   면 접 고 사:  2018. 1. 13(토)  시간 및 장소 개별공지

   합격자발표:  2018. 1. 18(목)  오전 10시 본 대학원 홈페이지

   등 록 기 간:  2018. 1. 18(목)-1. 26(금)  합격자에게 안내됨

 

    

문의: 대학원 교학처 041-570-7940/  041-570-7750(팀장님과 상담가능)

 http://grad.kornu.ac.kr/

 

 

http://journaltherapy.org/3087

 

http://journaltherapy.org/2779

 

http://cafe.naver.com/poetryjournaltherapy

 

al magnus (used here for therapeutic purposes only)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님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채일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님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바로 숨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밀어(密語) - 서정주]

 

오빠가  갑자기 하늘 나라로 가신지 벌써 3년이 되었다.  까마득해 보이기도 하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늘 밤엔 저 먼 곳 별이 되신 보고픈 얼굴들이, 별이 되어 내 가슴에 뜨고 지는 분들이 자꾸만 그립다.

엄마, 아버지, 언니,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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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4.

 

큰오빠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이다.

물론 오래 앓으셨지만 갑자기 어느날 아침 떠나실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에게 아주 특별했던 큰오빠, 가족 중에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시고 보살펴주시고, 내가 아버지 같이 의지했던 오빠.

어린 시절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동화책을 한 아름 사다 주시면 외도록 그 책을 있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오빠 방에는 철학책, 시집, 화집, 문학전집 등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일어, 불어, 영어 등 외국어 책을 쑤알라 쑤알라 하면서 읽는 흉내를 내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 하얀 커버가 씌워진 안락의자에서 나는 엄마 품에 안긴 듯, 참 포근했었다.

오빠가 벽에 걸어 놓은 고흐, 고갱, 세잔, 르노와르, 마티스 등등의 그림들은 어린 내게도 얼마나 큰 경이로움과 알 수없는 위로와 기쁨을 주었던지.

오빠가 전축에서 들려주시던 클래식 음악들,  오빠가 즐겨 부르던 영화 "셰인"의 주제곡,....

 

어린 시절 오빠는 가끔 나를 불러서 외국 시를 읽어주셨다.  10대의 시인이라면서 프랑스 시인의 시를 읽어주던 기억도 난다.

긴 겨울 밤 한 이불 속에서, 또는 짧은 여름 밤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보면서 듣던 엄마의 구수한 옛날 얘기처럼 오빠의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내게는 참 따뜻하고 소중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교내글짓기는 물론이고, 시장, 그리고 도지사 상을 늘 받았던 기억이 닌다.  그당시 내 꿈은 소설가였다.  그 꿈을 하얗게 잃어버린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그래서 나도 오빠처럼 대학교 때 모든 선택과목을 철학으로 했었을까? 

 

7남매의 막내로 그것도 다섯째 딸로 엄마 나이 40에 태어난 나(어쩌면 반갑지 않아서였을까?)-- 엄마는 간난아기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던거 같다. 어느날 오빠가 안방에 들어가보니 핏덩이인 내가 빈 방에서 혼자 꼬므락거리면서 오빠를 쳐다보는데 갑자기 그렇게 측은할 수가 없으셨단다. 그때부터 오빠는 날 유난히 사랑하셨다.  크면서 유달리 애교가 많았던 나를 보며 오빠는 늘 우리집에 봉희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요, 라고  하셨단다.  엄마 젖이 나오지 않아서였을까, 간난아기 때 몇일이고 밤새 울기만 하여서 엄마는 얘가 이러다 죽으려나보다 하셨단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아이용 분유도 우유도 없을 때였다.) 그런데 어느날 오빠가 미군부대에서 나온 분유를 사오셔서 그걸 (젖병도 없던 시절이니) 그릇에 타서 수저로 떠 넣어주었더니 간난애가 한 대접을 다 받아먹고 그 날로부터 색색 잘 자더란다. 그래서 엄마는 그 때 미안했다고, 넌 어려서 젖을 주려서 몸이 약하다고 늘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 오빠가 명동 찻집에 친구들 만나려가면 나를 꼭 데리고 다니시면서 따뜻한 우유(역시 분유를 탄 것)을 시켜주셔서 그때 그 맛을 못 잊어서일까,  나는 유난히 따듯한 우유를 좋아한다.  여름에도 가끔 우유를 뜨겁게 데워 마시곤 한다. 

 

결혼하고 뒤늦은 나이 유학을 떠났다 돌아왔을 때 친정 가까이 살면서 엄마가 우리 딸을 키워주셨기에 오빠는 자연스레 우리 딸을 키워주신 셈이 되었다. 내가 수없이 이런 저런 일로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아플 때 마다, 무슨 교통사로라도 날 때마다,  성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기우뚱기우뚱 걸으시며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달려오셨던 오빠...... 내게는 은인인 오빠.  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하는 삶을 가르쳐주신 오빠. 병약하셨던 아빠 대신 아버지처럼 내가 의지했던 오빠.

 

헌칠한 키에 넓은 이마, 오똑한 콧날,  멋스런 모습.
나이들어서 병원에 초췌한 모습으로 입원해 있을 때도, 요양병원에서도 모두들 잘 생기셨다고 하던 오빠.

담배를 좋아하셔서 늘 손에서 구수한 옥수수 냄새가 났던 오빠.

머리가 유달리 뛰어나신 오빠.  7남매를 다 보살펴주신 오빠. 책임감이 그 누구보다 뛰어나고 성실하셨던 오빠.

옷을 멋스럽게 입었던 오빠.

미술재능도 뛰어나셔서 그림으로 중고시절 중국까지 다녀오신 오빠.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던 철학공부를 못하고, 예술공부도 못하고 맏이라서 실용적인 공부를 하셨어야 했던 오빠.

(결국 문리대 철학과를 학사편입으로 나오시긴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 주변에 힘든 사람들을 늘 가족처럼 초대해서 돌봐주던 오빠.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 내 곁에 없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좀 더 자주 찾아뵐 걸..... 이리 허망히 가실 줄 알았으면....

 

오빠 사랑해요.  감사해요.

아픔 없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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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해야하는 세가지

그건 죽기 마련인 모든 것을 사랑하기,

당신의 삶이 거기에 기대고 있음을 깨닫고

그들은 가슴 깊이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보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놓아 보내기.  (M. 올리버)

 

 

photo by bhlee

 


2008.5.8

아파트 화단에 며칠 전 모란이 함박웃음처럼 화알짝 피었었다. 어제 저녁 일부러 카메라를 가져갔지만 벌써 시들어가고 있었다.

모란꽃을 보면 내 맘에 살아계신 엄마가 생각난다.

어린시절 우리 집엔 아주 큰 꽃밭이 있었다. 뒷마당 비스듬히 경사지게 만든 꽃밭에는 키 작은 채송화부터 맨드라미, 해당화, 모란, 사르비아, 칸나, 매화, 온갖 색깔의 장미, 사철나무, 무궁화, 찔레, 수국, .. 등등, 참 많은 꽃나무들이 (그리고 대추나무도) 있었다. 나는 언니 오빠가 모두 학교 가고 혼자 남은 오후, 쨍하게 깨질 듯한 정적 속에서, 그리고 현기증 나게 환한 햇살아래서 항상 꽃밭에서 놀았던 것 같다.  바닥에 뚜욱뚜욱 떨어진 꽃잎들을 주워서 돌로 찧어 혼자서 일인 몇 역을 하면서 소꿉놀이도 하고....  엄마를 찾아 부엌으로 가면 커다란 무쇠 솥들이 돌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주르륵 앉아있고 그 아래 불 꺼진 아궁이는 오후의 정적만큼이나 거대한 암흑의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킬 듯 쳐다보았다.  평소 따뜻하던 부엌은 나른하고 외로운 오후의 정적 속에서는 항상 그렇게 두려움을 주는 장소였다.  엄마는 늘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나는 참 외로웠다.

서울로 이사 오면서 유달리 꽃을 좋아하셨던 엄마는 모란꽃을 꽃밭에서 파서 싣고 오셨다.  서울에서도 몇 차례 이사를 갈 때마다 잘 견디어오던 모란을 어머니는 오빠가 마침내 아파트로 집을 바꿀 때 집 화단에서 우리 집 아파트 화단으로 옮겨주셨다.  못내 남의 손에 그 사연과 역사가 담긴 모란을 넘기고 싶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마침 우리 아파트가 1층에 있었기에 거실 바로 앞 화단에 그 모란을 심어주셨다.  엄마의 모란은 오랜 세월 죽지도 않고 참 감사하게도 봄마다 자줏빛 짙은 웃음을 벙실벙실 성실히도 피워올렸다.... 그리고 우리가 또 이사하면서 엄마의 모란은 그만  이제 남의 집 베란다 앞에 남겨지게 되었다.  가끔 그 아파트단지에 사는 언니를 방문할 때면 나는 일부러 내가 살았던 동엘 가본다.  베란다 앞 화단에 모란이 잘 있는지 보고 싶어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모란은 전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남아 몇개의 꽃을 성실히 피우고 있었다. 올 봄엔 가보지 못했다.  사실 두렵다. 그 모란이 어느날 웃음꽃을 거두게 되는 것을 보는 게...

새벽에 어렴풋이 눈을 뜨면 엄마는 항상 라디오에서 새벽의 명상 프로그램을 듣고 계셨다. 잠결에 들려오던 음악은 타이스의 명상곡과 생상의 백조였다.  그 많은 일과 중에서 늘 책을 읽으시던 어머니.  나이 들어, 앉아서 졸고 계시는 어머니께 '엄마, 누워 자..' 하면 얼른 '아니다..' 하시고 다시 무언가 하시던 어머니.. "잠자는 시간은 죽은 거 한가지인 데....." 하시며 살아 있는 시간들을 아끼시던 엄마. 

 

엊그제 동네에서 모란을 보았을 때,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잠든 공원묘원은 봄이되면 꽃이 유달리 아름다운 곳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봄에 늘 공원묘원으로 놀러 가서 다른 사람들이 하필 묘지로 봄나들이를 가는지 이상하게 생각한다던 Mrs. Patch의 말이 생각난다.  난 한번도 엄마의 묘소에 혼자서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그립다고 말하는 게 참  염치없고 죄스럽다.  

 

어김없이 5/8일은 찾아오는데 나는 엄마를 찾아뵐 수 없다.  엄마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치매 병원에 계실 때도, 그렇게 그 곳에 홀로 남겨지는게 싫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 우리만 가면 집에 데려다 달라구 아기처럼 애교를 부리며 보채셨는데....  다른 사람 다 몰라봐도 그리 사랑하셨던 우리딸이 가면 유난히 좋아하셨던 엄마. 그때도 나는 내 고통에 함몰되어 자주 찾아 뵙지도 않았다.  참 모질고 이기적인 나쁜 딸이었다. 인간은 얼마나 모질고 이기적인가.   내가 엄마 그립다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후회란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인지....

사람들은 꼭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야 후회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란 안전하다. 책임이 따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때에야 후회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간은 이기적이다. 

용서를 해 줄 이 이미 사라진 후에야 허공에 대고 용서를 구하는 이 이기심.


부끄러운 나의 사랑은 늘 그렇게 한 발 늦고야 만다.... (2008.5.8.)

연두- 도종환 

 

초록은 연두가 얼마나 예쁠까?

모든 새끼들이 예쁜 크기와 보드라운 솜털과

동그란 머리와 반짝이는 눈

쉼 없이 재잘대는 부리를 지니고 있듯

갓 태어난 연두들도 그런 것을 지니고 있다

연두는 초록의 어린 새끼

어린 새끼들이 부리를 하늘로 향한 채

일제히 재잘거리는 소란스러움으로 출렁이는 숲을

초록은 눈 떼지 못하고 내려다본다 


아이- 이성복

 

저의 아이는 높은 계단을 올라가

문득 저를 내려다 봅니다

저 높이가 아이의 자랑이더라도

저에겐 불안입니다.


세월을 건너 눈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리곤 이내 눈이 멀겠지요
우리가 손잡을 일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사연- 도종환

 

한평생을 살아도

말 못하는 게 있습니다.

모란이 그 짙은 입술로

다 말하지 않듯

바다가 해일로 속을

다 드러내 보일 때도

해초 그 깊은 곳은

하나도 쏟아 놓지 않듯

사랑의 새벽과 그믐밤에 대해

말 안하는 게 있습니다.

한평생을 살았어도

저 혼자 노을 속으로 가지고 가는

아리고 아픈 이야기들

하나씩 있습니다...

by Victory by Rene Magritte(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


문을 열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문을 닫았습니다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정처없습니다

 

아, 나는 살아서,
아직 살아서,
정처없습니다

(leebonghee)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무감각한 뿌리들을 흔들어 깨운다.

겨울은 우리를 따듯이 지켜주었지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어주고
희미한 생명을 마른 뿌리로 먹여주었지

[T. S.   엘리엇, <황무지>중에서/bhlee역]sss

from "The Burial of the Dead", [The Waste Land] - T. S. El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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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어김없이 입에 맴도는 구절입니다.
스스로 무덤이 된 사람은 가슴에 무덤을 지을 필요가 없어서 일까요.
그냥  잠을 자고 싶은데 자꾸 "살아서" 살아야 한다고, 살아있으라, 고 합니다.
끊임없는 고통은 끊임없는 생명의 증거라고..
죽음의 연습에 중독되지 말라고..

지난주 올 들어 첫 꽃을 보았습니다. 캠퍼스 길가에 노란 수선화 두 송이가 수줍은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어느새 푸르러진 풀 섶 속에 작은 제비꽃이 숨어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보아주는 이 있든 없든 말없이 성실히 피어있는 작은 꽃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나도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슴을 흔드는 4월을 시인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이 시는 4월이면 누구나 한번쯤 중얼거려보는 엘리엇의 유명한 시, [황무지]의 첫 구절입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생명수 같은 봄비가 무감각하던 겨울뿌리를 흔들어 망각의 잠에서 깨워주는데 왜 잔인한 달인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엘리엇은 현대인을 황무지에 사는 “죽은 산자(the living dead)”라고 말합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방불한 것은 그 의식이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식별하는 능력, 순수하게 불타는 열정,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에 접근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과 아름다운 것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정서,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에 접촉하지 못한 인간은 자신이 누군인지 망각한 채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과 세상의 인정을 받기위한 욕망에 이끌려가는 자신과 소외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황무지이며,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세상이무지 같은 "메마른" 불모의 계절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황무지 인간인 우리들은 추억(과거)과 욕망(미래)이 가져오는 고통이 아프고 싫어서, 때로는 현실이 너무 버거워서 어둡고 무감각한 깊은 땅속에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잠들어 있고 싶어합니다. 과거를 떨쳐내느라, 미래를 쫓아가느라 때로 우리는 영원히 오늘을 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 의식의 무감각함을 흔들어 일깨우면서 생명을 가져다주는 봄이 때로는 진실의 태양빛처럼 너무 부시고 아려서 그만 눈을 감고 싶어집니다.  4월이 잔인하다든 것은 이러한  살아있으나 죽은 자처럼(little life) 잠든 채 살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의식의 죽음, 그 비극적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그들에게 생명과 의식을 일깨우는 4월은 잔인하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 엘리엇의 또 다른 시 구절처럼 너무 많은 진실을 견디어 낼 수 없는("Humankind cannot bear very much reality") 존재들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4월입니다.  긴 겨울의 침묵을 깨고 어김없이 푸르러 오는 생명의 계절, 내 속에 불어오는 진실의 녹색바람을 잔인하다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는 용기를 갖고 싶습니다.  못 견디게 향기로운 바람에 또 다른 환상이나, 자기합리화의 거짓 잠 속으로 도망가기 보다는 내 안에 진정한 깨달음이 움틀 수 있도록 겸허한 맘과 올곧은 눈을 열리기를 가만히 기도해봅니다. 나도 환상과 망각의 잠에서 깨어나고 싶습니다. 진정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열정으로 깨어 살아있고 싶습니다.
살아서 살고 싶습니다.  가끔 가던 길 멈추고 물어봅니다. "나는 살기 위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학칼럼 중에서]

무서운 시간 -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 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 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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